[경고] 아래 글을 읽지 않고 "하위헌스 원리"를 보면 바보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림 1] 하위헌스 원리로 설명하는 빛의 굴절(출처: wikipedia.org)
[그림 2] 평면파의 파면이 만드는 점 전원(출처: wikipedia.org)
[그림 1, 2]에 보인 하위헌스 윈리(Huygens principle)는 빛이 가진 파동적 특성을 설명하는 근본 원리이다. 하위헌스 원리에 따르면, 빛의 움직임은 파동(波動, wave)이며 빛의 모든 파면(波面, wavefront)은 새로운 원천으로 작용하여 순차적으로 전달되는 다음 파면을 계속적으로 만든다. 즉, 원천에서 만들어진 파면이 다시 원천을 생성하는 반복적 원천 생성과 파면 전달 과정을 통해 빛은 파동 형태로 전파된다. 하위헌스 원리는 최초의 이론 물리학자란 별명을 가진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1629–1695)가 1678년하위헌스 49세, 조선 숙종 시절에 제안했다. 하위헌스의 미국식 발음은 호이겐스이다.[하위헌스를 호이겐스라 부르는 이는 옛날 사람이다.] 파동 측면의 광학(光學, optics) 이론을 완성한 프레넬Augustin-Jean Fresnel(1788–1827)의 업적까지 기려서 하위헌스 원리를 하위헌스–프레넬 원리(Huygens–Fresnel principle)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림 3] 하위헌스 원리로 설명하는 굴절(출처: wikipedia.org)
수학과 물리학에 다재다능했던 만물박사 크리스티안 호위헌스는 신생 독립국 네델란드 헤이그[헤이그(The Hague)는 미국식 발음이며 네델란드어로는 덴 하흐(Den Haag)임]에서 1629년조선 인조 시절에 태어났다. 당시 네델란드는 1567년조선 명종 시절부터 시작된 80년 전쟁 혹은 네델란드 독립 전쟁(The Eighty Year's War or Dutch War of Independence)의 주인공이었다. 또한 1617년조선 광해군 시절부터 독일을 무대로 벌어진 30년 전쟁(The Thirty Years' War)까지 일어나 네델란드는 전쟁 넘어 전쟁인 상황에 서게 되었다. 다행히 호위헌스 집안은 네델란드에서 부유하고 영향력이 큰 가문이었기 때문에, 두 전쟁의 와중에도 호위헌스는 집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기하학(geometry)에 재능을 보였다. 또한 크리스티안의 아빠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 메르센Marin Mersenne(1588–1648),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와 교류하는 유명인이어서, 호위헌스는 데카르트와 메르센의 조언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80년 전쟁과 30년 전쟁은 1648년하위헌스 19세, 조선 인조 시절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phalia)이 체결되면서 끝났다. 종전 조금 전인 1645년에 호위헌스는 네델란드의 레이던 대학교(Leiden University)에 입학해서 법학과 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이때부터 호위헌스는 기하학이란 도구를 이용해서 현수선(懸垂線, catenary)과 같은 물리 문제를 공략했다. 호위헌스의 기하학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호위헌스의 연구 방법은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연역법보다는 현실 문제에서 원리를 찾는 귀납법에 가까웠다. 그래서 구심력 혹은 원심력 공식을 뉴턴Isaac Newton(1643–1727)보다 먼저 발견했지만, 운동 법칙을 연역해서 풀지 않고 기하학과 중력에 대한 특성[물체는 항상 지구 중심으로 연직해서 떨어지는 성질]만 사용했다.
망원경과 렌즈 제작에 전문가였던 호위헌스는 기하학을 바탕으로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였다. 사실 호위헌스 원리는 렌즈 설계에 쓰이는 기하 광학(幾何光學, geometrical optics)의 근원을 설명하는 도구로 제안되었다. 호위헌스 원리를 쓰면, 파면의 이동, 반사, 굴절을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속도 $v$로 이동하는 빛 파면의 이동을 생각한다.